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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위에서 길찾기-//2006년 가을호
  
 작성자 : 여성회
작성일 : 2006-11-07     조회 : 930  

내안의 ‘불손함’을 찾아서-2006년 여름, 앙상한 캠펴스를 헤매다-


정선미 / 일상에서 만나는 분노와 상처가 내 안으로만 숨지 않기를, 정제된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중인 여성회 신입회원




한 달 전 즈음의 일이다.
한 학생이 학교 인터넷 게시판에 총학생회의 여학우 관련 정책이 미비하다는 내용의 의견을 게시한 것이 학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보수적이고 답답하게만 생각되었던 학교에서 여성주의와 관련된 사안이 공론화 되고 있다니, 반갑고 동시에 두려운 마음으로 게시판을 열어보았다. 예비역 체육대회나 예비군 훈련 버스 지원 등의 총학 정책을 짚으면서 상대적으로 여학우 관련 정책은 매우 미비하고 따라서 재고의 여지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그 글은 충분히 귀담아 들을 만한 의견이었다. 뿐만 아니라 여성주의를 고민하네 하면서도 행동하지 않았던 나에게는 부끄러움을 일으킨 따끔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다수로 보이는 학생들이 의견을 게재한 학생에게 반론 뿐 아니라 비난과 조롱, 인신공격까지 퍼붓고 있었고 적반하장 격으로 ‘그 따위’ 글을 올려 물의를 일으킨 점을 사과하라는 말까지 하고 있었다. 학교 게시판이 이렇게 수준 이하의 글로 도배가 된 상황에 이른 것은 전반적으로 여성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몰이해에 기인하지만 대학생의 최대 화두가 취업이 되면서 학내 여론이 빈사 상태에 빠진 것과도 깊은 관련이 있어 보였다. 단적인 예로, 교내의 토익 강의에는 몇 백 개의 좌석도 가득 메워지지만 사회 운동가를 초청한 특강은 너무 휑한 분위기에 연사를 보기도 민망할 지경이다. 그리고 이런 학내 분위기를 업고 등장한 현재의 총학생회에 여성을 비롯한 정치적 소수자를 위한 정책에 대한 인식이 부재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였다.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마음이 바빴다. 그러나 정당한 목소리가 저열한 방식으로 공격당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분노 때문에 그대로는 공부든 뭐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이 문제에 대해 분노와 고민을 함께 나눠 왔던 친구가 곁에 있었고 우리는 작은 목소리나마 목청껏 외쳐 보기로 작정했다. 성명서를 작성해 대자보로 인쇄해서 학교 몇 군데에 게시했다. 물론 소용돌이의 중심인 인터넷 게시판에도 올렸다. 둘 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 대자보를 만들어 붙이는 과정이 예상보다 육체적으로 꽤 힘든 작업이라는 사실은 놀라웠지만 우리 의견을 향한 몰이해와 비난, 공격은 예상하고 시작한 일이라 크게 힘겹지 않았다. 얼마간 입맛을 잃고 체중이 조금 줄기는 했지만 한 걸음 뒤에 서서 냉소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진창에 뛰어든 편이 날 편안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이번 일은 나에게 우리의 무력하고 우울한 초상을 눈이 시리게 바로 보라고 말하는 듯 했다. 그것이 젠더든 평화, 인권 문제든, 자본주의이든지 간에 대학이 이미 사회적 고민을 드러낼 공론장 자체가 형성될 수 없는 토양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지만 무거운 마음으로 인정해야 했다. 먹고 살기가 더 팍팍해져서, 까딱하다가는 도태되기 때문에 취업에 성공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는 시대의 빈곤한 철학은 우리를 옥죄는 위협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시대를 향한 비판 정신 따위는 고이 거두고 기성 사회에 훨씬 더 “공손”하기를 강요받는다. 기업의 대학생 대상 홍보 프로그램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Challenge’(도전)이라는 말 역시, 사실 ‘기업 이윤 극대화’ 가 허울만 뒤집어 쓴 것일 뿐이라고 한다면, 너무 삐딱한 생각일까. 그러나 도대체 무엇에 도전하라는 말인가. 좀 더 높은 연봉을 얻는 데에, 좀 더 안락한 삶을 꾸리는 데에?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도 캠퍼스의 잔디를 공 들여 깎아서 커다랗게 ‘도전’과 ‘패기’ 라는 글귀로 새겨 표어를 만들어 놓았다. 인위적으로 풀을 깎아 대형 표어를 전시하는 그 방식 자체도 지지하기 힘들지만 총총거리며 토익 교재를 들고 그 옆을 지나갈 때면 저 ‘도전’이라는 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불편해지곤 했다.

진짜 ‘도전’이란 사회에서 강제하고 있는 삶의 방식을 의심하고 그 틀을 넘는 대안을 꿈꿔보는 것이 아닐까, 하고 내 멋대로 생각해본다. 나 역시 오롯이 ‘불손한 젊은이’는 못 되는 탓에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도 되는 걸까 하고 때때로 전전긍긍한다. 그러나 역시 ‘착하고’ ‘공손하게’ 사는 것보다는 내 안에 있는 ‘불손함’을 잃지 않고, 의심하고 생각하고 말하고 움직이며 사는 것이 더 즐거운 삶이 될 것 같다.

힘이 센 사회적 공갈, 협박에도 굴하지 않기 위해서는 깊고 단단해져야겠다고 되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