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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밖으로 - 인도 2-//2006년 가을호
  
 작성자 : 여성회
작성일 : 2006-11-07     조회 : 1,067  

아직도 사리를 못 입는 여자



황은영//선교사인 남편과 함께 인도에 정착하여 3년째 살고 있는 딸 셋을 둔 엄마



인도에 온지 2년.
엄청난 배를 드러내며 입는 사리를 아직 한번도 못 입어 봤다. 내 소유로 되어 있는 이 뱃살을 어떻게 추슬러야 하는 가도 큰 문제였지만, 그렇게 덥석 사리를 입고 싶지 않았다. 사리를 입는다고 인도 여성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은 외면하고 싶은 내 눈에 자꾸 거슬리는 인도여성들의 삶들이, 인도사리를 입는 것을 미루고 있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이 곳은 아직도 연애결혼이 그다지 자연스럽지 못한 곳이다. 공원에 가면 서로 끌어안고 있는 커플들을 볼 수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결혼은 더욱이 오랜 습관을 따르고 있다. ‘다우리’라는 결혼 지참금이 바로 그것인데 여자 쪽에서 남편의 부모에게 내야하는 돈이다. 나름대로 형편에 따라 정해지는 금액이어서 그 차이는 있으나 최소 백만 원부터 많게는 수천만 원을 넘기도 한다. 가끔 이 문제로 결혼이 한없이 늦춰지거나 결혼 이후에도 이 다우리로 인한 문제가 끊이질 않아 가끔씩 여자들의 자살과 타살의 원인으로 나오기도 한다. 이러한 부담으로 시골에서는 여 신생아를 죽이는 경우가 아직도 존재한다. 특히 달릿(불가촉천민으로 카스트4계급에도 끼지 못하는 계급)여성들은 어린나이부터 하루의 생계뿐만 아니라 다우리 값을 벌어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결혼을 늦추며, 파기당하며 일을 한다. 그리고 결혼을 해서 드디어 사리를 입고, 전리품 같은 목걸이를 목에 건다.
인도의 기차역 예매 창구나, 버스를 타면 여자 전용 창구와 좌석이 있다. 한국에도 없는 여자 전용 좌석이라니…… 주로 버스 앞 편에 있는데, 남자들이 눈치 보며 앉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 빽빽이 여자들이 앉아있는 모습을 보며 여자들에 대한 배려(분리일지도)라고 보았었다. 언제나 밀리는 기차역 예매창구에서의 여성 전용 창구 이용은 참 용이하다. 대부분의 일들은 남자들이 처리하는 문화에서 여성창구에 줄이 늘어지는 일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좀 바빴던 날, 그날따라 남자들 창구가 한산해서 난 그 쪽 줄에 서기로 맘을 먹고 장장 한 시간을 서있었다. 여성창구보다는 빨라보였기에 기다렸고, 내 차례가 왔는데, 그 직원 왈 여성창구로 가란다. 아니 이게 무슨 말씀! 무려 한 시간을 기다렸는데, 여성창구가 배려라고 생각했던 내겐 이해 할 수 없었던 순간이다. 영어나 유창해야 따져보든가 하지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있자니, 빨리 비키라는 눈짓과 외국사람이라서 뭔가를 실수했나보다는 안타까운 시선들을 감당키가 어려워 난 비켜섰고, 결국 순수 배려의 창구가 아님을 확인한 채 여성 창구’ 줄의 맨 끝에 다시 섰다. 난 그때 알았다. 그 많은 창구 중 달랑 하나인 여성 창구에 ‘배려’의 의미를 붙인 나의 실수가 컸음을……
처음 내가 인도에 와서 얼떨결에(?) 참석한 모임 중 처음과 두 번째가 우연찮게도 여성들의 모임이었다. 처음에 참석한 그 여성모임은 사실 지금도 그 모임의 목적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 지인의 권유로 그 후 두 번 더 참석한 후 지금은 안간 지 오래다. 여성모임이 있다는 것으로 희망을 갖고 있지만, 매번 모일 때마다 단상에 10명도 넘는 남자들을 모시고(?), 꽃다발을 목에 걸어주고, 그리고 그 들의 긴 연설을 듣는 것이 집회의 전부인데, 그로인해서 지원받는 뭔가는 그를 이끌어가는 몇 남자들 호주머니에서 끝나겠다는 의심을 버리질 못했다. 그러나 여성이 여성의 이름으로 모인다는 의미 만으로라도 그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기에 관계의 끈은 놓지 않고 있지만 이 만큼만이라도 감사해야 하는 건지…… 그리고 두 번째로 참석했던 모임은 'AIDS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교육 집회였다. 많은 달릿 여성들이 불려져 왔다. 그들에겐 어떤 모임에 초대 받는다는 것이 그리 드문 일이 아니어서 일까? 무척 예쁘게 차려입고 왔다. 무슨 특별 파티에나 온 듯한 표정으로 흥분한 모습이었다. 나와 눈빛을 맞추느라 분주하고 내 손 한번 잡고 싶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는 동안 사실 막상 나는 내가 왜 그 자리에 와 있는지를 가늠하며 어색한 눈 인사를 계속 보내야 했다. 뒷자리 귀퉁이에서 말 그대로 구경이나 하자고 간 것인데 이미 단상 맨 위 한 중앙에 나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돈 많은 한국여자의 특권을 톡톡히 누리며 왕좌같은 자리에서 그들을 내려 다 보며 고함으로 일관된 남자 강사들의 지지자 역할자로 긴 시간 앉아있었다. 많은 눈동자들이 꽤 진지했다. 중간 중간 질문도 서슴없이 하고, 자지러지게 웃고, 고개를 끄덕이고. 사실 뭐라고 강의를 하는지 난 통 이해 할 수 없었지만 오히려 어쩌면 저리도 자신들의 감정표현에 솔직할 수 있을까 하는 경이로움으로 난 그들을 바라보았다. 어쨌건 이 모임의 주제는 성에 관한 것일 텐데 말이다. 그러다 문득 AIDS 모임에 왜 달릿 여성들만 앉아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전히 흥분된 얼굴로 앉아있는 여성들에게 이렇게 열정적으로 질러대는 소리들의 내용들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행사가 끝나고 긴 프랑카드 속에서 사진 한 장 찍어주고 나서 나를 데려간 그 강사에게 강의의 요점을 물어보았다. 그가 말해줬다 “에이즈가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를 알렸다. 저들은 에이즈가 뭔지 모른다 ” “왜 꼭 저들이 알아야 하는가?” “저들은 돈이 없고, 또한 장거리 트럭기사들은 여자가 필요하다. 결국 이들에게 거래가 성립되고. 이로 인해 에이즈는 전 인도로 퍼져가고 있다.” “그러면 저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하나?,” 이어지는 내 질문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말 할 수는 없다. 단지 그들이 믿을만한(?) 사람이 아니라 잘 모르는 사람과 성관계를 할 때는 반드시 콘돔을 사용해야 한다는 말을 할 뿐이다.” 그 날의 그 여자들은 행사 내내 즐거워했고 함박만한 웃음으로 사진 찍은 후 돌아갔다. 마치 그들이 에이즈의 확산의 주범인 것 마냥 야단맞는 자리임에 분명했던 것 같은데 말이다. 하다못해 돌아가는 길에 콘돔하나씩이라도 쥐어 보냈는지…… 아마도 한번 몸값보다 콘돔 값이 더 비씨리라.
.내 남편은 인도의 식탁을 극찬한다. 특히 달릿 사람들의 식탁을. 대부분 저장식 음식이 아니라 매 끼니 음식을 만든다. 그래서 사실 신선하고, 또한 남은 것은 길거리에 부어놓으면 지나가는 소들이나 개들이 처리해 주니 쓰레기문제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건 이것저것 상에 가득 차리고 먹는 한국 식탁에 비해 커리 한 솥과 밥 한 솥만 해놓으면 각자 자기 접시에 담아 먹고 난 후 설거지 양도 작고 이 얼마나 환경친화적인 식문화냐며 입에 침이 마른다. 그러나 내가 보는 인도의 식문화는 좀 다르다. 원래 먹기에 간단한 음식이 만들기는 더 복잡한 법이다. 간단한 방식으로 온전한 음식을 만들려니 들어가는 재료만 해도 엄청나고, 그 시간과 수고는 말로 할 수 없다. 그 일을 매 세끼마다 일하는 도중에 감당해야 하는 것이 여성들의 몫이다. 불편한 부엌에서, 때론 나뭇가지로 불을 지펴가며 그들이 오랫동안 끓여낸 인도 커리는 사실 먹기엔 너무 간편하다. 약 오를 정도로……
인도여성에게는 다양한 계급의 삶이 있다. 이 글은 인도여성의 삶 전부는 절대 아니다. 단지 나의 관심분야인 달릿층의 여성들이 내게 들킨 몇 가지 삶의 이유로 나의 사리입기가 자꾸 늦어짐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