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 비밀번호   자동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밀번호 찾기

 




 
  기획특집 2-//2006년 가을호
  
 작성자 : 여성회
작성일 : 2006-11-07     조회 : 908  

‘여성’이 뜬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여성’ ‘여성성’이라는 단어가 자주 들린다. 정계와 재계에 여성지도자들이 많이 등장하고, 여성기업간부가 증가하고, 여대생들의 비율이 높아졌음을 보고 여성이 뜨고 있다고 호들갑을 떨며 여기저기서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언론 속에 나타난 여성 - ‘여성성’ 트렌드 만들기

“여성적 리더십에 국민이 기대하는 것은 ‘매력은 있지만 불안한’ 애인의 모습은 결코 아니다. 섬세하고 소통이 쉬우면서도 생활 구석구석을 어루만져 주는 엄마의 편안함이다.”(모성정치, 애인정치//동아일보 2006년 3월30일)
“다양성이 존중되는 21세기 지식사회에서는 패거리 문화 위주의 ‘남성성’보다 모성적 공동체를 지향하는 ‘여성성’이 리더십의 요체라는 지적도 많다(여성리더십, 부드럽다, 그러나 다양하다//한국일보.3월23일)
“잘 꾸미는 남자는 시대가 원하는 경쟁력이라는 인식까지 펴지면서 국내 남성 화장품 시장은 전체 화장품 시장의 두 배에 가까운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남성의 외모의 변화 뿐 아니라 자신안의 여성성을 긍정하고 이를 자유롭게 표출한다는 점에서 남성성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 한다“(새로운 트렌드를 주목하라//서울 경제 2006년 2월 27일)
“대한미국 첫 여성총리가 탄생했다. 여성 정치인의 비상이 시작되었다…(중략)…정치?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이 핵심 키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여성’이 대한민국을 움직이고 아시아를 움직이며 세계를 움직이기 시작했다”(한국의 힘¡ 여성이 뜨고 있다.//여성과 정책 7월 기획특집//여성부발간)

이런 기사를 접하면서 일부는 여자들의 지위가 높아졌다, 여성들이 대접받는 사회가 되었다. 우리사회가 여성친화적으로 변했다 말할지 모르나, 무수한 담론들 속에서 ‘여성성’을 엄마의 편안함, 모성애, 외모를 가꾸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어, 가부장제 사회가 ‘여성’을 규정하는 협소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이 느껴져 우리들은 불편하다.
심지어 한겨레 신문이 최근 보도한 〈여성성이 뜬다 〉시리즈 “①여자 옆이 좋아” “②암탉이 울면 알을 낳는다.‘ ”③우린 너무 가족스러워“ ”④언니와 정치“”⑤여성성 천의 얼굴“기사에서는 직장 내 위계와 서열, 직원의 아침을 준비하고 경조사를 챙기는 것까지 ’여성성‘과 연관을 짓고 있어 여성성이란 단어가 남발되고 있고 결과적으로 일종의 .트렌드‘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어쨌든, ‘여성’과 ‘여성성’이 뜨고 있다.
과연 여성성은 존재하는가? 누구에 의해 규정되는 것인가? 규정될 수 있는가?
아제 우리가 그 담론을 함께 이야기하고 정리할 필요의 제기로 편집위원회에서 기획글을 싣기로 했다. 이번 호는 그 시작으로 ‘여성성’과 ‘남성성’ 담론의 역사적 과정에 대해 살펴보고, 다음 호에는 이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여 그 내용을 정리하여 실을 계획이다.

‘‘여성성’‘여성주의’, 진정 천의 얼굴인가?





대구여성회 편집위원회

때론 욕망의 대상으로, 소비의 대상으로, 때로는 소비와 욕망의 주체로, 생산자로 나아가 세계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담는 주체로 여성이 뜨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맥락을 지닌 담론 속에서 ‘여성성’, ‘여성주의’는 천의 얼굴로 읽힌다.

무수한 담론들 속에서, 주도적인 역사나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전쟁과 개발을 남성성의 본질로, 평화와 돌봄과 같은 주변부적인 힘과 가치를 여성성의 본질로 보는 이분법적 시각이 널리 통용되고 있는 듯하다.
포스트 포디즘적 컨베이어 시스템 생산양식(포디즘)의 산업사회가 후기산업사회로 와서는 포스트 포디즘 즉,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생산양식이 변화한다. 후기 구고주의와 해체이론에 힘입어 여성주위가 왕성한 성장기에 이른 듯하다.
생산양식을 지니는 후기 산업사회는 ‘차별화’, ‘개성’이라는 소비욕구에 맞춰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과 나란히, 삶을 사유하고 전망하는 방식도 명령·복종·위계 등 무뚝뚝한 ‘남성성’보다 보살핌·개방성·타인의 감정이해 등 상호존중과 조화를 추구하는 ‘여성성’이 경쟁력을 가지게 된 것 또한 분명하다.

여성성·남성성에 대한 이분법적 규정

“여성성”,“남성성” 이러한 규정은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차이가 심리 정서적 차이의 기본이 된다고 생각하는 젠더(Gender) 문화주의적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성과 남성성이 생물학적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서 길러지는 것, 즉 사회문화적으로 규정된다고 믿는다.
인식이 바탕이 된다. 이런 인식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구체적 생활 속에서 드러나는 여성들이 잘 하는 것들이 우리의 삶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재편할 수 있다는 증거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강금실 전 장관이나 한명숙 총리를 둘러싸고 들려오는 ‘수평적 리더십’이라든지, ‘배려’와 ‘사랑’의 실천들이 우리의 일상을 좀 더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성·남성성은 역사적이고 고착화된 개념이고 당연히 억압적으로 작용한다. “이 지구상의 마지막 식민지는 여성이다”는 뒤라스 『연인』, 『히로시마 내사랑』의 저자. 프랑스인으로 식민지 베트남에 살았던 말그리뜨 뒤라스는 지배민족었지만 가난했고, 어린시절 딸이라는 이유로 버려지기도 한다. 가난, 제 3세계, 식민지, 여성이라는 피해자의 경험을 뒤라스는 ‘자전적 글쓰기’라는 다른 방식으로 말하고 있다.
의 말처럼 피해자로서의 이 지구상의 절반인 피해자로서의 경험과 인식이, 여성적 ‘입장’을 구성해 온 것이다. 남성이 언어와 욕망, 권력의 주체가 되어온 수천 년 역사 속에서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가, ‘여성’과 ‘여성들의 삶’을 발라내고 있었다면, 성별 이해에 관한 무수한 논란들을 통해 지금은 그 발라내어진, 무시되고 언어화되지 못했던 삶들에 대해 말하고 제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발견해가는 중에 있다고 본다. 가해자적 제도와 권력, 언어의 덩어리들을 향해 저항하고 그 덩어리들을 부수고 녹여
성들이 규정한 역할이 아니라, 여성 스스로 고유한 인간으로서 스스로 존재하고 싶은 욕구의 표출인 것이다. . 지금은 그 벼려진, 무시되고 언어화되지 못했던 삶들에 대해 말하고 제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발견해가는 중에 있다고 본다.
폭력과 억압의 상황 속에서 당하는 피해자만이 상처를 받고 불행한 것이 아니다. 폭력을 행사하고 억압하는 자도 똑 같이, 때론 더 상처를 받고 불행해진다. 서로 사랑하고 행복하고 싶은 욕구가 여성들만이 아니라 남성들의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여성성에 대한 이야기가 싹은 언 땅을 뚫고 여성에게서 텄으나, 남성들 사이에서 더 가지가 뻗고 무성해지고 있다. 다행히도……
‘나’를 넘어서 공동체나 영성과 같은 넓은 바다로 나아가면서 자아를 새롭게 만나려는 움직임들 속에서 여성성·남성성에 대한 논의가 무성하면 할수록 그 내용은 풍성해지고 우리가 가졌던 오랜 고착을 자디잘게 부수고 녹일 수 있으리라.

문화적 대안이 되는 새로운 여성성, 여성주의
정말 수천 년간 주도해왔던 가부장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권력구조를 해체할 수 있을 것인가? 해체 할 수 있다면 왜,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까? 해체 이후 세계는 어떤 새로운 형식으로 관계망을 가질 수 있을까? 수많은 물음들이 뒤따라온다. 이 물음들에 답하기 위해 이제 말하기 시작해봄이 어떨지······.

무성한 가지들 사이로 열매가 맺고 달게 익도록 우리는 더 많은 자양분과 햇빛과 바람과 비가 될 수 있도록…… 여성들의 경험을 드러내고 느낌을 소통하고 말하는 주체가 되고, 또 실천을 통해서 하나의 증거가 되는 일…… 그 증거들이 모여 ‘낡은 천이 아닌 새 천으로 새 판을 짤 수있기를……소통과 배려가 녹아있는 여성의 새로운 언어를 생성해내고 ‘여성주의적 문화적 비전을 제시하는 일’ 여성주의자 김민예숙님과 나눈 말들 중에서.
속에서 우리는, 여성운동가는 살아갈 수밖에 없으리라. 시지프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