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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특집 1-//2006년 가을호
  
 작성자 : 여성회
작성일 : 2006-11-07     조회 : 1,128  

대구여성회와 북한이주여성이 만나는 이유


오우순열 평화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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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홍 치마저고리를 입고 꽃봉오리 같은 미소를 보내며 한반도기를 흔들던 북한미녀응원단의 모습 너머로 굶주림으로 인해 국경을 넘나드는 북한여성들의 유린된 삶이 오버랩 된다.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어야 한다”고 정희진은 말한다. 때때로 여성의 몸에 새겨지는 역사들은 우리를 두려움 속에 빠뜨리기도 한다. 분명 그랬다. 우리들이 처음으로 만났던 탈북여성, 북한이주여성의 모습은 듣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안다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사회적 책임과 실천을 요구하는 두려운 자리였음을 우리들은 고백한다.
북한인권문제를 남한 내 진보세력이 적극적으로 고민해 나가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여성회 회원들 사이를 오가고 있을 때, 평화위원회에서는 ‘그녀’를 만났다.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두만강을 세 번이나 건너야했던, 세 번의 결혼과 남성들의 폭력을 죽음으로 맞서야했던 ‘최진이’ ‘국경을 세 번 건넌 여자, 최진이’의 저자. 2005년 대구여성회에서 ‘평화인권배움터’ 강사로 그녀를 초대했었다.
씨를 만났다. 북한의 빵공장 이야기조차도 조금은 멀리 있는 ‘그들’의 이야기로만 들렸는데, 바로 우리 앞에 있는 생존자를 통해 알게 된 북한의 현실은 살아 움직이는 사실로 바뀌었고, 그것이 평화운동의 과제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공통된 문제의식을 우리들로 하여금 갖도록 부추겼다.
여성평화운동이 여성과 만나려면 여성의 일상과 사건들, 그리고 그 일상에 대한 여성의 인식과 자각 등에 깊숙이 파고들어야 한다. 그래서 언제나 우리들은 “평화는 나의 삶과 어떻게 관련되는가?”를 고민한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평화운동의 일상화’를 위한 과제를 찾고자 노력해왔다. 이러한 자각들이 북한이주여성과의 만남을 통해 확장되기를 또한 희망하게 되었다. 그러려면 우선은 북한이주여성을 만나야 했다. 그런 의도 하에 우리는 2006년 ‘북한이주여성과 더불어 살아가기’라는 이름으로 두 차례에 걸쳐 북한이주여성들을 만났으며, 또 심포지움을 통해 북한이주민지원사업의 방향성을 깊이 있게 고민할 기회를 가졌다. 사실 이제 첫발을 내딛는 우리들은 많이 미숙하고,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주여성의 목소리를 담아내기에는 앞서 활동하고 있는 단체들이 여성문제에는 다소 고민이 미치지 못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현재 탈북자는 10만 명을 넘었고, 국내 북한이주민 역시 7.000명을 넘어 만 명을 육박하고 있다. 적당한 호칭 ‘탈북자’라는 용어가 주는 부정적 이미지로 인해, 정부는 새터민이라는 이름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본 단체는 세터민이라는 용어가 뜻이 분명하게 와 닿지 않는 문제점을 들어 ‘북한이주민’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조차도 못 찾고 머뭇거리는 사이에 적지 않은 숫자의 그들은 이미 우리 곁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더구나 지난 10여 년간 북한의 식량난은 적게는 수십만에서 많게는 수백만의 아사자가 발생했을 정도이다. 1999년 이후 식량사정이 조금씩 호전되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생존자들이 가난과 굶주림에 놓여있는 게 사실이다. 더구나 북한의 식량난과 기근이 장기화되자 북한이주민은 중국에서 장기간 머물게 되고 있으며, 이들의 이주는 갈수록 더욱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 사회 내부에서 북한이주민에 대한 관심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보수우익진영의 활동은 북한이주민 지원활동을 반북감정을 강화시켜 나가는 것으로 악용되고, 반면 통일운동단체나 시민운동진영에서는 남북관계의 호전과 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한 기대, 북한정부의 반발과 남북정부 사이의 관계악화에 대한 우려 등등의 이유들로 인해 그리 관심을 표방하지 않고 소극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구여성회는 현실적으로 내 이웃으로 정착해서 살아가는 북한이주민을 주민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고, 또 그들이 차별받지 않고 남한사회에서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잘 살아가는 일 역시 통일된 사회를 준비해나가는 길이라 믿기에 북한이주민을 지원하고 그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평화인권운동의 연장이라 생각한다.
특히 북한이주민 가운데 여성수의 증가는 아주 눈에 띈다. 통일부의 북한이주민 연도별 입국인원을 보면 2004년 총 1.513명 가운데 남성이 501명, 여성이 1012명으로 여성이 남성의 두 배에 해당되며, 1989년까지 남성이 563명, 여성이 44명이었던 것에 반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여성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과거 탈북 초기와 달리 최근에는 어린이와 남성의 비율이 줄고 탈북자의 75%가 여성으로 변하고 있다. 특히 연변의 경우엔 90%가 여성이며, 그 중 80% 정도가 인신매매를 경험하며 대부분 농촌의 조선족 총각들과 결혼해 지내고 있다. 이러한 장기 불법체류자들은 폭력과 인권침해 앞에 무방비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한재흥, 2006. 북한이주민 지원활동에 대한 통전적 이해, 대구여성회 자료집

그리고 대구 지역에 거주하는 북한이주민의 수는 약 300명이며, 그 중 여성은 170여 명이다. 현재 남한에 이주한 이들의 경우 대다수가 경제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신체적 ?? 심리? 정서적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함께 오지 못한 가족을 데려오기 위한 시도와 불안, 남한 생활에서 느끼는 위축감과 신분 노출에 대한 두려움, 남녀 역할 지위가 변화하면서 생기는 부부불화, 중혼이나 동거에 관련된 문제, 남한 여성 혹은 남성과의 결혼 생활에서 오는 어려움, 자녀 양육 및 교육의 어려움 등등 이중 삼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대상자가 여성인 경우에는 부부간의 성역할 문제, 낮은 취업률, 자녀 양육과 부모 부양에 대한 문제 등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는 한국사회가 가지는 구조적 모순과 맞물려 북한이주여성의 경우엔 더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북한이주여성은 탈북과정에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게 된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인권은 매우 복잡하며 중첩성을 갖고 있다. 분단의 현실과 미군의 주둔, 사회 전반에 뿌리 박혀 있는 군사주의와 폭력, 유교적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합리화되는 여성 억압구조와 문화, 성별? 지역? 나이? 학력 등의 '차이'가 위계적인 차별로 이어지는 불평등한 사회 등 여성인권문제는 남한사회건 북한사회건 모두 심각하다. 더구나 우리 사회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폭력은 폭력으로 인식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우리사회는 ‘구체적 개인’이 존재하지 않는 ‘개인의 총합을 넘어선 민족’의 문제만이 늘상 부각되어진다. 한국사회에서 여성폭력의 범주는 직접적, 가시적, 신체적인 의미의 폭력에만 머물러 있다. 그러나 분명 북한이주여성들이 탈북과정에서 혹은 남한사회 정착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폭력은 성적?심리적?정서적?경제적 차원의 성차별 제도 안에서 형성되어진다. 그래서 이 부분들에 주목하고, 여성주의적 평화인권의 관점에서 북한이주여성의 어려움을 해석해내고, 과제들을 만들어 나가는 노력들이 우리들에겐 더욱 필요하다.
진정한 평화는 구체적 개인의 인권을 중시하고 인간의 삶에 고통을 주는 폭력에 못 견뎌하는 심성이 성숙될 때 비로소 경험할 수 있다. 일상적 폭력, 내면의 파시즘에 저항할 줄 아는 힘을 키우는 것, 그 폭력에 몸서리치도록 민감해질 수 있는 것. 그 노력이 바로 평화를 만드는 과정이다. 폭력과 차별에 익숙한 사회성, 그것을 가능케 하는 인식의 틀에 대한 깊은 성찰과 분석, 그 폭력을 해체하려는 시도야말로 우리들의 인권을 가능케 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북한이주여성들과 만나기를 희망한다.